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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밑줄 긋기31

허삼관 매혈기 - 위화 "(전략) 그 자식, 삼락이보다도 어린 자식이 감히 그렇게 말하다니, 우리가 삼락이를 낳았을 때 세상에 있지도 않았던 자식이 말이야. 이제 와서 감히 어느 면전이라고 으스대기는......" 이 말을 들은 허삼관이 허옥란에게 근엄하게 한마디 했다. "그런 걸 두고 좆 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고 하는 거라구."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 알게된 소설인데 사내도서관에 있길래 빌렸다가, 아주그냥 눈물 콧물 쏙빠지게 울고 웃고 하는 바람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었다. 최근 본 글 중에 가장 인상 깊은 마무리 문단이라 남겨본다. (ㅋㅋ) 2016. 5. 11.
구월의 이틀 - 장정일 소나무숲과 길이 있는 곳그곳에 구월이 있다 소나무숲이오솔길을 감추고 있는 곳 구름이 나무 한 그루를 감추고 있는 곳 그곳에 비 내리는구월의 이틀이 있다 그 구월의 하루를나는 숲에서 보냈다 비와높고 낮은 나무들 아래로 새와저녁이 함께 내리고 나는 숲을 걸어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뭇잎사귀들은비에 부풀고 어느 곳으로 구름은 구름과 어울려 흘러갔으며 그리고 또 비가 내렸다숲을 걸어가면 며칠째 양치류는 자라고둥근 눈을 한 저 새들은 무엇인가이 길 끝에 또 다른 길이 있어 한 곳으로 모이고온 곳으로 되돌아가는모래의 강물들 멀리 손을 뻗어 나는언덕 하나를 붙잡는다 언덕은손 안에서 부서져구름이 된다 구름 위에 비를 만드는 커다란 나무한 그루 있어 그 잎사귀를 흔들어비를 내리고 높은 탑 위로 올라가 나는 멀리.. 2015. 9. 20.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겨울은 많은 것들의 이름을 뺏어간다고 눈을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줄기와 가지만 남아 그저 알 수 없는 들과, 지명마저 사라진 듯 새하얗던 오솔길...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나는 이름 모를 그 길 위를 걷고 또 걸었다. 다만 조금씩 서로의 손이 따뜻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11)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중략)사랑을 이룬 이들은 어쨌든 서로를 좋은 쪽으로 이해한 사람들이라고, 스무 살의 나는 생각했었다. (15) 정말... 정말로 부끄러웠던 적이 있나요? (중략)인간은 누구나 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놀려대고 웃어도 산타는 오지 않는다. (25)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 2013. 9. 16.
고독한 자의 가을 - 게오르그 트라클 황금빛 포도주와 뜨락의 과실로그 해는 엄청난 힘으로 그렇게 끝났다숲들은 모두 이상스런 침묵 속에 잠기고외로운 자의 동행자가 된다그때 농부가 말한다 좋은 일이야길고 나지막하게 울리는 너희의 저녁 종소리는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즐거움을 안겨 준다철새 떼가 날아가면서 인사를 한다사랑의 포근한 시간이다조각배를 타고 푸른 강물을 흘러 내려가니연달아 스치는 아름다운 모습고요함과 침묵 속에 가라앉는다 *Saudade : 번역하기 힘든 포르투갈어로 무언가를 깊이 그리워하는 마음, 향수, 한(恨)의 정서 등을 표현하는 말. 2013.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