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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밑줄 긋기31

왜 쓰는가? - 폴 오스터 「뉴욕」지의 질의에 대한 답변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센트럴 파크 남쪽의 콜럼버스 서클 모퉁이에 있는 우리 할아버지네 60층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풍경이다. 창문은 열려 있고, 나는 손에 1페니짜리 동전을 쥐고 창가에 서서, 동전이 도로에 떨어지는 것을 보려고 그것을 창밖으로 내던지려 하고 있다. 그 때 나는 기껏해야 네 살이나 다섯 살이었을 것이다. 내가 막 손가락을 펴려는 순간,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안 돼! 그 동전이 누군가에게 맞으면 머리 속으로 곧장 뚫고 들어갈 거야!」1995년 왜 쓰는가? 「미안하다, 꼬마야. 나도 연필이 없어서 사인을 해줄 수가 없구나」... (중략)그 날 밤 이후, 나는 어디에나 연필을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외출할 .. 2012. 9. 16.
시간의 옷 - 아멜리 노통브 -에너지 특권층 입단 시험이라는 게 있습니다. 엘리트만이 에너지를 요구할 권리가 있답니다. 나 역시 소수의 지배 계층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잘나셨군요. -...(중략) 우리는 세 가지 면을 평가합니다. 지능(여기에는 교양이 포함됩니다), 성격(정직이 포함됩니다), 건강(여기에는 미모가 포함됩니다). -미모라니요?! -그렇습니다. 못생긴 사람은 떨어집니다. -말도 안 돼요! -지능이나 성격을 따지는 것보다 심한 것은 아닙니다. 지능을 평가하는 것은 미모를 평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공정한 일입니다. 지능과 미모는 65퍼센트까지는 타고난 특성이거든요. 불공정하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죠. -어째서 아름다워야 엘리트 계층에 속할 수 있는거죠? -그렇게 화난 사람처럼 굴지 마십시오. 그러한 기준은 언제나 있.. 2012. 9. 5.
악기들의 도서관 - 김중혁 "저기 버스를 자세히 봐라. 158번이 보이지? 너는 저 번호를 보고 158번이란 걸 알겠지만 우리는 번호를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어. 버스의 모습만 멀리서 봐도 아 저건 158번, 저건 238번, 다 알 수 있지. 오랫동안 일을 하다보면 저절로 체득하게 되는 거야." "번호를 보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죠?" "한 대의 버스는 매일 똑같은 길을 기나게 되어 있어. 똑같은 건물을 지나고, 똑같은 다리를 지나고, 똑같은 비포장도로를 지나고,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지. 그렇게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면 버스에는 어떤 `정형`이 만들어지고, 버스의 생김새 역시 일정한 방식으로 변모하게 되는 거다. 사람이 환경에 의해 변해가듯 버스 역시 마찬가지란다. 먼지가 많은 도로를 지나는 버스는 먼지의 틀 같은 것이 곳곳에.. 2012. 7. 11.
영화야 미안해 - 김혜리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하소연이나 연민보다 때로는 절망의 풍경화 자체가 절망을 설복하는 가장 유창한 언어임을 알고 있었다. (57) 2012.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