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밑줄 긋기

인생 - 위화

by 장삼도 2023. 7. 30.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현실과 긴장 관계에 있다. 좀더 심각하게 말하자면, 나는 줄곧 현실을 적대적인 태도로 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속의 분노가 점차 사그라지자, 나는 진정한 작가가 찾으려는 것은 진리, 즉 도덕적인 판단을 배격하는 진리라는 걸 깨달았다. 작가의 사명은 발설이나 고발 혹은 폭로가 아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고상함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상함이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초연함, 선과 악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동정의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바로 이러한 심정으로 나는 미국의 민요 <톰 아저씨>를 들었다. 노래 속 늙은 흑인 노예는 평생 고통스런 삶을 살았고, 그의 가족은 모두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원망의 말 한마디 없이 언제나처럼 우호적인 태도로 세상을 대했다. 이 노래는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그래서 나는 이런 소설을 쓰기로 했고, 그것이 바로 이 책 <인생>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사람이 고통을 감내하는 능력과 세상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에 관해 썼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내가 고상한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다. 

 -13p. (작가의 서문 중에서) 

 

 이윽고 투박하긴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노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 19p.

 

 그러나 푸구이 노인처럼 잊히지 않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그처럼 또렷하게, 또 그처럼 멋들어지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말고는 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젊었을 때 살았던 방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늙어가는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노인을 시골에서 만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생활이 그들의 기억을 흐트러뜨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대개 지난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대충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에 별다른 애정이 없는 듯, 마치 길에서 주워들은 것처럼 몇 가지 사소한 일들만 드문드문 기억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 사소한 기억마저도 자기가 아니라 남에 대한 것이었고, 한두 마디 말로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표현해버렸다. 그곳에서 나는 종종 젊은 세대가 그들을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이를 개 몸뚱어리로 먹었나."

 그러나 푸구이 노인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기 좋아했고, 자기 이야기 하는 걸 좋아했다. 마치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 또 한 번 그 삶을 다시 살아보는 것 같았다. 그의 이야기는 새의 발톱이 나뭇가지를 꽉 움켜잡듯 나를 단단히 사로잡았다. 

 -63p. 

 

 내가 집에 막 돌아왔을 때, 자전은 내 신발 밑창을 만들고 있었는데 내 안색을 보더니 어디 병이라도 난 줄 알고 깜짝 놀라더군.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던 것들을 말해줬더니, 그녀도 놀랐는지 얼굴이 하얘졌다 파래졌다 하더라구. 

 "정말 큰일 날 뻔했군요."

 후에 나는 생각을 달리 하게 됐지. 내가 나 자신을 겁줄 필요는 없다고 말일세. 그게 다 운명인 거지. 자전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 그녀는 이로 실을 끊으며 이렇게 말하더군.

 "저는 복 같은 거 바라지 않아요. 해마다 당신한테 새 신발을 지어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어요."

- 111p.

 

 

 출근해야지, 생각하다가 잠시 빨래를 기다리는 사이 집어든 책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버렸다. 이야기를 모두 읽고 새삼 작가의 말 중의 일부를 적어내리자니 감회가 새롭다. 

https://youtu.be/y2weWaKmC44

My Old Kentucky Home, Goodnight, -by Foster

 

작곡가가 붙인 이 곡의 원제가 "Poor Uncle Tom, Goodnight" 이었다고 하니 위화 작가가 영감을 받은 민요가 이 곡이 아닐까 싶다. 

'읽기 > 밑줄 긋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2) 2023.10.23
완벽한 아이 - 모드 쥘리앵  (0) 2023.05.05
허삼관 매혈기 - 위화  (0) 2016.05.11
구월의 이틀 - 장정일  (0) 2015.09.20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0) 2013.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