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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

쳇 베이커, 라흐마니노프를 만나다

by 장삼도 2023. 4. 3.

공연의 감동을 안고 멋지게 그리고 싶었던 마음만큼은 멋지..지 않나요

2023.4.2 일요일 예당 챔버홀


정환호 피아니스트님 등장 

라흐마니노프의 캐릭터를 굉장히 맛깔나고 위트있게 소개시켜주셨다. (feat.MBTI)

덕분에 그에 대해 여태까지 <피아노 잘치고 손 크고 코 크고 무섭게 생긴 낭만시대 작곡가> 이런 식으로 대충 구겨 넣었던 카테고리에서 <소심해서 말도 잘 못하지만 내 가족에겐 따스한 이웃집아저씨>같은 이미지가 추가되어 그의 생애가 좀 더 궁금해졌다..! 

1.어릴 때부터 재능이 많고 실력이 뛰어났지만 첫 교향곡이 악평을 받았다. 쇼미더머니 디스전에서도 들어보지 못했을 구체적으로 창의적인 혹평은 다음과 같다...

" 이집트의 10가지 재앙같다. 지옥의 음악 학교가 있다면 교장감이다"

대략 이런 내용의 ppt가 나오자마자 관객들 빵터짐 

2.찾아온 우울증, 그렇게 좋아하던 피아노와 작곡을 3년이나 등한시하다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우울증 치료와 최면술을 받고 그 쌤에게 헌정한 피협2번이 초대박을 쳤다. 

3.성공가도...인줄 알았으나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으로 재산을 몰수당함 (부동산에 몰빵해서 더 쉽게 몰수되었다한다. 이것도 살짝 정환호님의 개그 포인트였던 것 같았다) 그 후 미국 망명

4.작곡... 할 줄 알았는데 피아노연주와 지휘로 활동했다고 한다. 분위기가 현대음악으로 이미 많이 넘어간 시기여서 망명 후엔 6곡 밖에 작곡하지 않았다고한다. 생각보다 작품 수가 적어서 의외였던 부분이었다. 

5.가족을 두고 떠난 본인의 아버지와 달리 라흐마니노프는 한 명의 아내와 두 아들을 끝까지 지켰다. 


Vocalise (정환호님+vn.박진수님)

Elegie (정환호님+vc.박건우님)

Symphony No.2 3rd mvt. (박진수님+박건우님+정환호님) 

 

무슨 순정 만화같은 곳에서 방금 인간세상에 내려오신 듯한 멋쟁이 세 분이 연주까지 저렇게 멋지다니, 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심포니2번 3악장은 공연을 예습하며 들었던 오케스트라 버전이 더 따뜻한 느낌이라 좋았지만 이 세분의 살아있는 연주도 너무 좋았다. 뒷부분으로 갈 수록 빠져들었던 것 같다. 


꽤 길었던 인터미션.


정환호 피아니스트님 등장 22

역시 쳇 베이커에 대해서도 너무 재미있고 센스 넘치게 설명해주셨다. 대충 알던 <젊을 때 잘생김, 연주 잘함, 노래까지 잘함, 근데 마약 엄청함, 그러다 앞니도 빠짐, 말년에 좋지 않았음> 이런 흐름에 추가로 엄청나게 흥미로운 살들을 붙여주셨다. 

1.2만원짜리(적절한 TMI) 평전에 한 챕터마다 다른 여성의 이름이 둘은 나옴,

2.Chet Baker and Strings 앨범 좋음,

3.퍼시픽 재즈 레코드에서 노래를 시켜서 Chet Baker Sings 앨범으로 아이돌을 만들어버림, 슈퍼스타됨, 고작 25살이었다, 

4.Hell's Horizon 이란 영화에서 그의 발연기를 볼 수 있다. 사망 플래그를 시전하지만 영화 끝나기 2분전까지 살아있는 역할(?)이라고 한다. 유투브에 있다. 이왜진... 

5.온갖 마약은 다 한 듯... 남의 세션비까지 가로채 자기 돈처럼 쓰고 약속된 연주에 나타나지도 않고 연락 두절 되기도 함.. 

6.삶이 엉망이었는데,, 음악은 들으면 좋다. 이 대목에서 최근에 본 영화 <Tar>와 함께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I Fall in Love Too Easily

Everything Happens to Me

It Never Entered My Mind (오 이런 솔로곡 쓰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흐귝 플루겔혼이나 색소폰 솔로로..)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앞부분 멜로디 시네마 파라디소랑 살짝 비슷해서 기억난다, 솔로 너무 좋았음)

My Romance 

You Can't Go Home Again (1부에서 연주된 라흐마니노프 2번 3악장. 곡과 다섯 악기의 매력 모두 놓치지 않은 훌륭한 편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누가...하신 걸까? 찾아가서 소심하게 쌍따봉 날려드리고 싶은 마음...) 

앙콜 Blue Bossa (인트로에서 BA.이동민님 Tp.박준규님 하고싶은 거 다 하신 느낌ㅋㅋㅋ) 

-프로그램은 틀리게 썼을 수도 있다.. -

 

인터미션 때 악기세팅을 보고 재즈인데 드럼이 없네? 싶었는데, 첫 곡이 시작되고 이유를 알았다. 오, 베이시스트 분이 전체적인 리듬감을 리드하며 그때 그때 공기의 흐름까지 바꿔놓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트럼페터님의 솔로에 때론 여유있게 화답하는 그런 패시지도 있었음. 눈 감고 음악에 몰입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뭔가 장소가 <예술의 전당>이어서 그런지? 한 곡 한 곡이 끝나면 뜨거운 환호가 터져나왔지만 연주 중간엔 다소 엄숙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마 나처럼 연주자분들 솔로 끝날때마다 내적 박수를 미친듯이 치셨을 분들이 많았으리라.

클래식 연주자분들과 재즈 연주자분들의 스타일이 너무나 절묘하게 잘 어우러진(애초에 둘로 나누는 것이 이상한가?) 너무나 멋진 공연이었다. 아니, 그래서, 편곡을 누가 하신 건가요?ㅁ?  멋지시네요오 ㅠ.ㅠ 


음악당 뒤편에 대성사 가는 길이 그 정도로 벚꽃 맛집이었을 줄이야. 광혜원 뒤뜰 이후로 숨겨놓고 좋아할 만한 공간이 하나 더 생겼다.

덕분에 공연 끝나고 합류한 남친과 한참 앉아있기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에 가기 전에 대한 음악사에 들러서 라흐마니노프 심포니2번, The Bells, 레스피기 로마의 분수 악보를 샀다. 인터넷에 무료로 배포되는 악보를 굳이 종이책으로 사는, 반올림 7만 정도의 사치를 부려보았다. 옆구리에 악보를 끼고 조금 신났다. 

모짜르트의 <돈 조반니> 악보 앞에 서서 <돈 안줘봤는데요?> 라며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웃긴 듯 진심으로 활짝 웃고있던 남친의 옆모습을 보고 너무 열이 받았다. 집에 가면서 또 웃길래 더 열받았다. 왠지 같이 웃어버린 나 자신에게도 열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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