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4
어쨌든 루틴이 돌아온다.
매일 시집과 소설을 한 권씩 읽는다, 문장들의 밀도로 다시 충전되려고.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과 걷기를 하루에 두 시간씩 한다, 다시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게.

p.45 곁에 있어준 노래들

나는 일어날 거야.
해처럼 떠오를 거야.
통증을 무릅쓰고
그걸 천 번 반복할 거야.

이 노래를 처음 들은 날, 달력 종이 뒷면에 1부터 100까지 숫자를 적어 벽에 붙였었다. 하루에 하나씩 지우자고 생각했다. 하루씩 살고 쓰자고, 그걸 천 번만 반복하자고. 너무 오래 잠을 못 자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남은 삶에는 평화도 희망도 없고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결론에 다다라있어서. 이상한 일은 소설을 써갈수록 점점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잠드는 시간이 조금씩 늘었고, 차츰 악몽을 덜 꾸게 되었다. 피와 시체와 유골로 가득한 소설을 쓰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2020년 가을에 초고를 완성하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경하가 성냥 불꽃을 켰을 때 알았다. 이것이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는 걸. 깨어진 유리를 녹여 다시 온전한 덩어리로 만드는 불길인 걸.

P.108
4월 1일 (정원 일기 중에서)
정원에 햇빛이 더 필요한 것 같아 거울 세 개를 더 샀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거울로 잡을 수 있는 각도의 햇빛이 드는데, 한 시간에 서너 번 거울의 위치를 바꿔주느라 매우 바쁘다. 3시가 되어 더 이상 내가 햇빛을 줄 수 없게 되면 그늘진 정원을 조용히 바라만 본다. (거울)햇빛이 드는 정원은…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무지근할 때도 있다.

P.145
12월 19일 (정원 일기 중에서)
기와에 쌓인 눈이 햇빛에 녹으며 홈통으로 흘러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음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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