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시

병원(病院) - 윤동주

by 장삼도 2013. 3. 8.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작가 한강이 어렸을 적 일기장에 베껴 써보았다던 그 시. 

'읽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0) 2013.03.12
이런 시 - 이상  (0) 2013.03.08
여수 - 김명인  (0) 2013.02.26
푸른 밤 - 나희덕  (0) 2012.07.11
봄의 정원으로 오라 - 잘랄루딘 루미  (0) 2012.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