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소설집 중 첫 소설.
와아아… 좋다, 하며 호로록 읽어나감



어른의 화법 22p.
-당신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나는 당신의 아버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당신을 보면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모두의 안식과 평화를 빕니다.
일주일 뒤 에코스에서 다시 만난 로버트는 머뭇거리다 내게 감사를 표했다.
-많은 이들의 이해와 위로 속에서 나는 아버지를 잘 보낼 수 있었어. 그리고 네 메시지는 내게 큰 힘을 줬어.
나는 뭐라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마나 한 말’을 최대한 진심 어리게 하는 것도 어른의 화법일 텐데, 누군가의 부고와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가진 표현의 한계와 상투성에 어쩔 줄 몰라했다. 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그 ‘반복’의 무게에 머리 숙이는 게 결국 예의 아니던가.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 냈던 말 41p.
잠시 후 노래가 끝나자 헌수는 “왠지 ‘가지 말라’는 청보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배웠어’라는 가사가 더 슬프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왠지 알 것 같다며.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 그 빤함, 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 냈던 말들이 몸에 붙는 것 같다”고, 아직 ‘인생’을 얘기하기엔 좀 젊다 싶은 세 살 연하 애인에게 나는 장난스레 물었다.
-너는 그걸 누구한테 배웠어?
헌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농담하듯 받아쳤다.
-어린 시절 가난에게?

내 차례가 된 것뿐 42p.
이제 와 헌수 말을 빌리자면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저 내 차례가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앞에서 매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을까? 마치 살면서 이별이라고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

잘 판단 않게 된 44p.
-나는 늘 부러웠거든. 자기 부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
그 때 헌수는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땐 미처 몰랐지만 아마 헌수 마음속에서는 하고 싶은 말과 해선 안 되는 말, 할 수 없는 말 등이 뒤엉키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건 ‘좋은 부모’나 ‘그렇지 않은 부모’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일지 몰랐다. 마치 내가 나의 삶에 계속 놀라게 되면서부터 다른 사람 삶도 잘 판단 않게 된 것처럼.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순간 45p.
그리고 이제 나는 헌수도 없고, 엄마도 없고, ‘다음 단계’를 꿈꾸던 젊은 나도 없는 이 방에서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정말 많이 배웠어’란 가사의 노래를 듣는다. 보다 정확히는 네가 아닌 너의 부재로부터 무언가 배웠다고. 그런데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 지금은 그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 쪽에서 먼저 원곡 위에 ‘안녕’이란 한국어를 덧씌워 부른다고. 우리 삶에는 그렇게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고 아마 나는 그걸 네게서 배운 것 같다고.


책 끄트머리 인터뷰 중에서
Q 작가님이 인물의 계급적인 상항을 묘사할 때 특별히 염두에 두는 것은 무엇인지요.
A 제게 중요한 동시에 큰 주제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기본적으로 ‘생활에 대한 고민이 있는, 생활과 가까운’ 인물들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습니다. 지금 흥미롭게 읽고 있는 책에 ”비웃지도 탄식하지도 또한 미워하지도 말고 다만 이해하라“는 스피노자의 문장이 나오던데 저 역시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싶고요.
한 가지 더 떠오르는 건 <빌리 엘리어트>인데요. 탄광촌 소년 빌리가 발레리노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지요? 그런데 영화에는 없고 뮤지컬에만 있는게 하나 있는데, 마지막에 무대 위 광부들이 안전모에 달린 조명으로 일제히 빌리를 빌추며 막장으로 다시 내려가는 장면입니다. 어떤 한 세계를 빌리는 떠나고 광부들은 남지요. 무대 위 대형 리프트가 지하로 천천히 내려갈 때, 낙하하며 광부들이 노래할 때, 저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났떤 기억이 납니다. 제게는 이 작품이 우리 모두에게는 아름다움을 느낄 능력과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동시에 그게 언제나 가능한 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 빌리를 지지하고 지원하지만 광부들의 상황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 건데요, 저는 아마 이런 식의 이야기를 신뢰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 지원이 무의미했나? 물으면 꼭 그렇지는 않은 이야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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