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고 얇고 단순한 구성의 책 한권이 주는 울림은 정말 깊고 진했다. 

매일 똑같이 잠에서 깨서 고양이 똥을 치우고 일터에 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제일 중요하고 너무나 당연한 사실 하나를 망각하고 있다.

나는 죽는다는 단 하나의 사실 말이다. 


43, 전에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고요를 내뿜고 있다, 

빨래통 두 개, 모탕, 벽에 걸린 갈퀴와 삽, 어쩐지 모든 것이 제 안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말하는 듯하다, 자신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쓰였는지, 모든 것이 그 자신처럼 나이들어, 각자의 무게를 지탱하며 거기 서서, 전에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고요를 내뿜고 있다, 내가 대체 왜 이럴까? 멀뚱거리며 여기 서서, 창고 안의 오래된 물건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니,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여기 이렇게 서서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고 말이야,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그러나 물건들은 제각기 지금까지 해온 일들로 인해 무겁고, 동시에 가볍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상상해보라, 세탁기가 생기기 전에 에르나가 저 통을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저 안에다 얼마나 많은 빨래를 했는지, 그래 결코 적지 않은 빨래였다, 그리고 이제 에르나는 가고 없는데 빨래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것이다,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 

 

134, 저 아래는 궂은일이 생겼구먼, 

그들은 더이상 페테르의 고깃배가 아닌 다른 배에 앉아 바다 위에 떠 있다. 그리고 하늘과 바다는 둘이 아닌 하나이고 바다와 구름과 바람이 하나이면서 모든 것, 빛과 물이 하나가 된다 그리고 거기, 에르나가 눈을 반짝이며 서 있다, 그녀의 눈에서 나오는 빛 역시 다른 모든 것과 같다, 그러고 나서 페테르가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래 이제 길에 접어들었네, 페테르가 말한다

 그리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그리고 요한네스는 몸을 돌려 저멀리 뒤편, 저 아래 멀리, 싱네가 서 있는 모습을 본다, 사랑하는 싱네, 저 아래, 멀리 저 아래 그의 사랑하는 막내딸 싱네가 서 있다, 제일 어린 마그다의 손을 잡고서, 그리고 요한네스는 싱네를 바라보며 벅찬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싱네 곁에는 그의 다른 자식들 모두와 손자들과 이웃들과 사랑하는 지인들과 목사가 둘러서 있다, 목사는 흙을 조금 퍼올린다, 싱네의 눈에도 에르나에게서도 본 것 같은 빛이 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어둠과 저 아래서 벌어지는 모든 궂은일을 바라본다

 저 아래는 궂은일이 생겼구먼, 요한네스가 말한다

 이제 말들이 사라질 걸세, 페테르가 말한다

 그리고 페테르의 목소리는 몹시 단호하게 들린다

 그리고 싱네는 요한네스의 관 위로 목사가 흙을던지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는 독특한 분이었죠, 유별난 구석이 있었지만,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걸 저도 알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늘 속을 게워내야 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싱네는 생각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하늘에 흰 구름이 떠 간다, 그리고 오늘 바다는 저리고 잔잔하고 푸르게 빛나는데, 싱네는 생각한다, 요한네스,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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