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진성이라는 것은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 인문학적 사상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동안에 또 다른 류의 사상도 발전할 것이다. 농노제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라는 것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해방주의 사상의 최고점에서는 옛날 몽고의 바투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수의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게 될 것이다. 정작 그들 자신은 굶주리고 헐벗고 외부의 공격에 무기력하면서 말이다. 그러한 사회질서는 어떤 사조속에서도 훌륭히 살아남아왔고, 그렇기 때문에 속박의 기술도 점진적으로 발전해왔던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인들을 마굿간에 재우지 않지만, 그 대신 농노제에 아주 교묘한 껍질을 씌워서 매번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이념은 이념일 뿐이고.... (61p)
..."안타까워, 너무 안타까워." 그가 말했다. 눈물이 볼을 따라 흘러내렸다. "자네 누나는 명랑하게 웃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지만 상태는 절망적이야. 그 레지카라는 노인은 나를 증오하고, 내가 자네 누이에게 몹쓸 짓을 했다고 말하지. 그 말도 일리가 있어. 하지만 나에게도 내 관점이라는 것이 있단 말이야. 나는 나와 자네 누이 사이에 일어난 일을 전혀 후회하지 않아. 모두 사랑해야 한다고.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안 그런가? 사랑 없이는 삶도 없어. 사랑을 두려워하며 피아는 자는 자유롭지 못한자야."
그는 조금씩 다른 주제로 넘어가더니, 페테르부르크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자신의 논문과 학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신나게 이야기하면서, 더 이상 누이와 자신의 고통과 나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삶이 그에게 손짓하는 것이다. 마샤에겐 미국과 `모든 것은 사라지나니...`라고 새겨진 반지가 있고, 블라보고에겐 논문과 출세가 있었다. 나와 누나만에 예전과 똑같은 상태로 남겨진 것이었다. (161p)
만약 내게 반지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나는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나니...` 라는 문구가 있는 것을 고를 것이다. 나는 어떤 것도 그저 흔적 없이 사라지지는 않으며, 아주 작은 걸음조차도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믿는다. (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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