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제례악을 꼭 보고싶다는 생각의 씨앗은 도대체 언제 심겼는지 기억도 안날 만큼 오래되었는데,
드디어 올해는 일찌감치 바지런을 떨어 예매에 성공했다.

해가 질 무렵 정전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남편과 함께 종묘제례악에 사용되는 악기들을 찾아보았다.
https://ko.m.wikipedia.org/wiki/%EC%A2%85%EB%AC%98_%EC%A0%9C%EB%A1%80%EC%95%85

종묘 제례악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종묘 제례악(宗廟祭禮樂, The Royal Ancestral Ritual in the Jongmyo Shrine and its Music)은 조선왕조 역대 임금 및 왕후의 신위(神位)를 모신 종묘에서 올리는 제사인 종묘제례(宗廟祭禮)[1] 행사 때 사용하는

ko.m.wikipedia.org

악기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편성된다.
박(拍)
편종(編鐘)
편경(編磬)
방향(方響)
피리
대금(大琴)
축(柷)
어(敔)
해금(奚琴)
진고(晋鼓)
마조촉(摩照燭)
절고(節鼓)
아쟁(牙箏)
태평소(太平簫)


악기의 재료나 언제 쓰는지 이런 정보들을 보다보니 나무 상자에 구멍을 뚫어서 절구질(?)을 하는 것처럼 생긴 악기인 ‘축’의 소리나,
귀로와 비슷하게 생긴 ‘어’
꽤나 큰 북인 ‘진고’의 소리가 궁금했다.

안내방송 후 연주자와 무용단분들이 입장하시고 조명이 탁 켜지며 음악이 시작될 때 상상보다 훨씬 멋진 소리에 전율이 흘렀다.
박, 축, 진고가 연주가 시작될 때 음향기기의 딜레이 효과 때문에 겹쳐 들리는 소리가 밤 공기에 흩어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았다.
우리 좌석 앞쪽의 태평소 선생님도 너무 멋졌다. 오직 태평소 솔로만 울리던 찰나의 순간에 압도당했던 그 기분은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8x8 의 진영으로 서서 일무를 추시는 무용단도 말로는 그 멋짐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멋있었다.
영화 <야연>을 볼 때 느꼈던 색채와 움직임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이 생각났다.

음악에서 특이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세가지가 있었는데
첫번째,
제사의 진행을 보시는 MC선생님(?)은 F키(였다면) 도~파~~ 도도~~파~~~ 하시며 이렇게 5 - 1 을 계속 반복하며 한잣말로 진행을 봐주시고 (대략 누구 나오고 누구 들어가라~ 뭘 올려라 내려라.. 이런 말로 추정됨.. 모니터에 해설이 있었으나 그 해설 또한 단어만 한글이지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이 아니었다..ㅎㅎ)
그 진행에 맞춰서 동시에 진행되는 악기 연주에서
편종, 편경, 현악기류는 정해진 멜로디를 딱딱 연주하는 것 같은데 노래와 부는 악기들은 멜로디 사이사이에 굉장한 애드립을 넣어서 하는 것이다.
특히 노래하시는 분들의 꾸밈음은 악기와 과감한 불협화음이 진짜 많은데도 신기하게 듣기 좋았다. (오케스트라로 똑같이 연주하면 좀 이상하게 들렸을 것 같다)

둘째,
모든 곡이 펜타토닉 음계로 이루어졌는데 문무할 때 한 곡, 무무할 때 한 곡은 도리안 스케일이었던 것 같다.
마이너 펜타토닉은 1 b3 4 5 b7 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 포함되지 않은 장 6음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읭???!! 곧이어 나오는 2음에도 놀랐다.
구수한 쌀과자를 30분째 우적우적 씹다가 갑자기 누가 별사탕을 입에 넣어주면 그런 느낌일까나.

셋째,
이게 진짜 신기했던 부분인데, MC선생님께서는 여전히 도~파~~ 도~파~만 반복하시는 중에 무무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모든 악기가 한 키를 내려 연주하는 것이다.
나의 작고 소중하고 허접한 음감님께서 무무쪽의 음악을 마이너 펜타토닉과 메이져 펜타토닉을 번갈아 인지해주시는 덕분에 Eb이 자꾸 1음으로 들렸다 말았다 하는 와중에
MC선생님은 자꾸 2음을 (파) 중심으로 노래를 하시는, 그러니까 이게 바로 완벽한 이중조성음악 아닌가?
(근데 무무 차별인가용? 왜 키 낮춤… 이런 삐뚤어진 생각도 들었긴 했음. 근데 진짜 무무 차별인가용?)

비 내리는 두 날 사이에서 운좋게도 비가 오지 않은 차가운 밤 공기
주최측에서 나누어주신 핫팩의 따뜻한 온도와 모기 패치의 달큰한 냄새
왜 멋있는지 모르겠는데 진짜 멋있는 음악과 환상적인 일무
저다지도 많은 분들의 의상의 통일된 색채와 움직임에서 오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

이런 것들을 느끼면서 공연은 끝이 났다.
개별 마이킹이라는 사운드 장비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 이 공간의 공기 울림으로 듣는 하모니는 어땠을까, 그런 상상을 나오면서 해보았다.
남편은 ‘뭐어~국아악~~??’ 이런 느낌으로 따라 왔다가 안보면 진짜 아쉬울 뻔했다는 감상과 ‘축’의 소리를 UI 사운드로 쓰면 좋을 것 같다, 진중 우육면관은 인생 맛집이 될 것 같다는 감상을 남겨주었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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