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나.. 좀 늘었는 걸?' 하고 우쭐한 마음이 들 무렵이면 어김없이 다시 코가 납작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일요일에 2016년에 녹음해온 음악을 연이어 듣다가 하필이면 바로 뒤에 존 윌리암스 할아버지의 Raider's March 를 재생했을 때가 그랬고, 어제 푸치니를 보러갔을 때도 그랬고, 오늘 공연에서 바르톡의 바이올린 2중주를 듣다가 정점을 찍었다. 

 벌름 벌름... 

 나의 코는 납작해지다 못해 볼드모트처럼 콧구멍만 남게 된 것이다. 

 

<1>

 Raider's March에서 느낀 점은 '모험심'이라는 같은 대상을 놓고 만들어진 결과의 차이인데, 표제음악적 면은 토스카에서 쓰기로 하고 일단 편곡적 부분에서 배운 점을 써놔야겠다. 

  1.  유니즌을 과감하게 써보자. (Raider's March의 첫소절은 무려 트럼펫 네명의 유니즌이다. 심지어 목관은 아직 나오지도 않고 트럼본 3명이 3화음을 부는데, 그 반주도 스트링과 유니즌이다.명쾌함, 전달력의 차이가 결과에서 느껴진다.)
  2.  1번과도 관련있는 얘기지만 나는 현의 div. 를 많이 써서 힘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많은 음을 내려고 욕심부리다가 소리가 얇아진다.
  3. 우드윈드 사용이 미숙하다. 언제나 새로워..짜릿해... 번뇌의 대상이야.. 
  4. 악보 프리퍼레이션 단계에서 세밀한 아티큘레이션을 놓치는 경우 결과물에 반드시 드러난다. 뉘앙스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 

 

<2>

 토스카를 보는 내내 나는 꿀잼의 망치로 계속 두들겨 맞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 참 묘하더라. 의심, 질투, 사랑, 안심, 미움, 걱정... 무려 초 단위로 휙휙 바뀌는 주인공의 변덕에 찰떡같이 들어맞는 음악. 심지어 스토리의 중심에 담겨있던 시대의 정치적 상황까지 묘사되고 있었다. 

 물론 음악은 모든 예술중에서도 가장 추상적이라 청자의 상상력에 따라 많은 주제에 얼추 들어맞는 면이 있지만, 그 얼추 들어맞추는 것도 대중적 정서를 음악적으로 공감시키는 능력이 반드시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미디어 음악, 그중에서도 게임음악을 제대로 해보자- 결심하는 요즘같은 때에 그 동안 사소한 이유로 기피했던 오페라 장르를 마음 활짝 열고 좋아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토스카 진짜 꿀잼. 

 

<3>

 세번째로 배우는 점은 작곡가와 음악 사이의 매체 즉, '악기'에 대한 것이다. 나는 매일매일 오케스트라를 미디로 찍으면서 자신을 악기와 매우 가깝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가상악기들은 악기의 다양한 주법별로 패치가 자세히 되어 있어서 상당히 리얼하게 찍어낼 수 있는데 오랜만의 실내악 공연은 바로 그 찍어냄의 기만을 부수라고 얘기해주고 있었다. 모든 이름 지어진 주법 외에 실제 연주자가 표현해내는 것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미처 다 이름지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게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 아닐 수 없는게 컴퓨터 음악이 있기 때문에 비싼 오케스트라 녹음으로부터 시간과 비용적으로 작곡가들이 자유로워졌지만 그 자유가 다시 컴퓨터로 작업하는 작곡가의 음악을 속박하는 셈이 된 것이다. (일반적인 척 얘기하지마....니 얘기잖아...ㅜ_ㅜ)

 

 역시 직접 경험만큼 망치로 두들겨 맞는 효과적 충격을 주는 게 없다. 뭐 이래저래 아주 조금씩은 분명히 늘고 있는 중이겠지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빨리 늘어야 하는데... 하는 초조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평생 성장하는 사람, 평생 성장하는 작곡가가 될 수 있을까? 음악망치로 자주 얻어맞고 살아야겠다. 

 

 

 

 http://imslp.org/wiki/44_Duos_for_2_Violins,_Sz.98_(Bart%C3%B3k,_B%C3%A9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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