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밑줄 긋기

악기들의 도서관 - 김중혁

by 장삼도 2024. 8. 15.

"저기 버스를 자세히 봐라. 158번이 보이지? 너는 저 번호를 보고 158번이란 걸 알겠지만 우리는 번호를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어. 버스의 모습만 멀리서 봐도 아 저건 158번, 저건 238번, 다 알 수 있지. 오랫동안 일을 하다보면 저절로 체득하게 되는 거야."

"번호를 보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죠?"

"한 대의 버스는 매일 똑같은 길을 지나게 되어 있어. 똑같은 건물을 지나고, 똑같은 다리를 지나고, 똑같은 비포장 도로를 지나고,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지. 그렇게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면 버스에는 어떤 '정형'이 만들어지고, 버스의 생김새 역시 일정한 방식으로 변모하게 되는 거다. 사람이 환경에 의해 변해가듯 버스 역시 마찬가지란다. 먼지가 많은 도로를 지나는 버스는 먼지의 틀 같은 것이 곳곳에 스며들 수밖에 없지 않겠니. 그런 일들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버스 역시 나름대로 지치는 거다." (242)

김중혁 단편모음 악기들의 도서관 중에서

 

- 2019.2.25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