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에서 글쓰기로
어릴 때부터 늘 인간이 궁금했어요. 인간이라는 게 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잖아요.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을 학살하기도 하고 또 지하철 선로에 아이가 떨어지면 가서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분도 있잖아요. 인간이라는 것이 그토록 넓은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다는 게 어릴 때부터 신비하고 무섭고 그래서 더 알고 싶고 알수록 두렵고 그랬거든요. 그러면서도 늘 질문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소설도 쓰게된 것 같아요. 인간에 대한 질문,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방법으로써 계속 글쓰기를 붙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화해하지 않으며 한 걸음씩
글을 쓸 때 어둡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어둡게 쓰는 건 아니고요. 제가 섣불리 화해하거나 치유하는 건 잘 못 해요. 화해하지도 않고, 치유하지도 않고. 제가 믿을 수 있는 만큼만, 걸음이 느리더라도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만큼만, 그만큼만 나아가고 싶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사실 우리는 계속 세계를 서서히 잃어가는 사람들인 거잖아요. <희랍어 시간>을 쓸 때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이야기를 쓰면서 이건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마치 쏘아진 화살처럼 떨어질 데를 향해서 빠르게 또는 느리게 날아가는 그런 존재들이라고요. 그런유한성을 잊지 않는 게 또 글쓰기의 방식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인간, 그리고 존엄성
인간이라는 것은 아주 복잡하고 위태롭고 깨지기 쉬운 존재라고 생각해요. 특히 인간의 존엄함은 무척 연약한 것이고요. 유리가 거기 있는지도 몰랐지만 깨지고 나면 유리가 깨졌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요. 되돌릴 수 없는 거라서 그만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고 인간의 존엄을 해칠 수 있는 것들을 끈질기게 응시하면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그런 거란 생각을 요새 하고 있어요.
일생을 잘 표류하기를
보르헤스가 만년의 인터뷰를 하면서 젊은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뭐냐고 물었을 때 백발에 주름진 얼굴로 '나는 일생을 표류하면서 살았고, 조언할 말은 한마디도 없다.' 이렇게 말했던 것이 저는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바라는 것은 일생을 화해하지 않고 누구에게 어떤 조언도 하지 않고 잘 표류하면서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늘 해요.
소설가 한강의 서재 중에서
- 2019.2.2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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