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그 자리에 있어 주리라 여겼던 것들이 잔상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떠난 이와 남겨진 이가 존재한다. 떠난 이와 남겨진 이는 모두 나이기도 하고, 동시에 당신이기도 하다. 서늘한 세상을 살며 스쳐 지나간 사람들, 그들과 함께한 시간, 찰나에 오갔던 시선, 자연스레 나누었던 감정. 이 모든 것들이 나와 당신의 세상에 묻어 있다. 그것은 마치 공기처럼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나와 당신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제가 좋아하는 글이 있는데, 카를 구스타프 융이 죽기 전에 쓴 「기억, 꿈, 사상」이란 에세이에 있는 문장이에요. ‘나는 나 자신에 관해 놀라고 실망하고 기뻐한다. 나는 슬퍼하고 낙심하고 열광한다. 또한 나는 그 모든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합을 계산할 수는 없다.’ 이 문장을 제가 <벌새>에 담고자 했던 것 같아요. ‘은희’와 ‘영지’가 겹칠 수 있는 부분을요. 사실 ‘은희’의 가족들에게도 제 부분 부분들이 다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요. 심지어 ‘은희’를 그렇게 차버리는 ‘유리’에게도, 생각 없는 ‘지완’에게도, 자기가 괴로워서 남을 괴롭힐 수밖에 없는 ‘대웅’에게 마저도요. ‘은희’와 ‘영지’뿐만 아니라, 캐릭터 하나하나를 다 쓰면서 내 모습이 다 그 인물들에게 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애정을 담아 쓰려 했고요.
<벌새> 김보라 감독 인터뷰 중에서
'읽기 >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건축가 승효상의 서재, 기억 속에 자리잡은 책들 중에서 (0) | 2024.08.15 |
|---|---|
| 한강의 서재 중에서 (0) | 2024.08.15 |
| 제임스 캐머런 -Score 중 (0) | 2022.06.06 |
| 제임스 뉴튼 하워드 (James Newton Howard, 1951~) (0) | 2017.10.16 |
| Gustavo Santaolalla 인터뷰 (0) | 2014.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