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불면의 콤비 모기+더위님들 덕분에 해도 아직 안일어난 새벽 시간에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말똥해진김에 컴퓨터를 켜고 켜켜이 먼지쌓인 옛날 싸이월드 게시판을 훑어보니
스트라빈스키, 패러독스, 개그, 책과 영화... 등등 여기에 옮겨다 놓고 다시 보고싶은 게시물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 중에 단연 손길이 가는 폴더는 '나의 음악'폴더였는데, 과거의 나는 비록 매우 거칠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엉성하게나마 뭔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음악으로 치환하려고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기울이고 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아예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먼저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고 나면 나머지 시간엔 축 쳐져서 나무 위의 나무늘보처럼 돼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직장인 퇴근+주말모드 가동)
여하간 최근에 이런 나무 늘보가 물 속에 첨벙 빠져서 정신없이 헤엄칠 기회가 있었는데,
그거슨 바로 BBA의 탑밴드 출연.
유건오빠 단독의 호기로운(?) 도전으로 시작한 탑밴드 출연은 우리 모두에게 폭풍과 같은 바쁨과 설렘과 불화와 화해와 돈독해짐 다른 좋은 인연들, 그리고 뮤즈를 데려와줬다. 본인이 의도했든 안했든 뭐 그랬다.
모두에게 그랬겠지만 특별히 나에겐 정말 중요한 경험이었는데, 그간 스스로에게 존재의 중요성 별점 1점을 주던 나를 이 밴드에서 없어서는 안될사람으로 자각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되든 안되든 일단 편곡을 해보자는 호기로움으로 실현되었다.
그래,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막상 원곡과 빈 오선지를 앞에 두니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김현철 1집 - 나의 그대는
춘천가는 열차가 수록된 김현철 1집은 무려 1989년 발매된 앨범이다. 내가 빠른 86이니까, 네살 무렵.
어찌보면 꽤 옛날이라 할 수 있는데 화성진행은 지금들어도 참 좋다.
verse
ⅠⅤm7 ⅠⅤm7 ⅠⅤm7 Ⅳmaj7 -
오오오오
bridge
Ⅳm7 bⅦ7 Ⅳm7 bⅦ7 bⅢ bⅥmaj7 Ⅴ-
오오오오
가사가 또 대박좋다. 거대한 염장이긴 하지만.....
가다몰래 뒤돌아본 나의 그대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모습을 등질순 없었나
가다몰래 뒤돌아본 나의 그대는
두눈속에 부서지는 햇살이 유난히 부신건 그건 왜 오 왜 왜
눈을들어 바라보곤 그냥 가긴 왠지 섭섭했나
저만치서 돌아오는 나의 그대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모습을 등질순 없었나
저만치서 돌아오는 나의 그대는
어차피 숨길수 없는 입가에 가득한 웃음 그건 왜 오 왜 왜
**(나의 그대는) 나의 그대는 (나의 그대는)
아무말 하지 않아도 그 모습이 내게 얘기하지
참았던 웃음 터져버린 나의 그대는
그런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항상 알고 있지
참았던 웃음 터져버린 나의 그대는
내 어깨에 안겨오는 그리움 가득한
그대 그건 왜 왜 왜
보이스의 부재는 청자입장에서 매우 커다란 것일테고, 그 빈자리를 악기들로 메꾸자면 리하모니제이션, 대선율, 악기배치 어느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중에서 딱히 내가 자신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ⅠⅤm7 진행의 반복은 Ⅰ Ⅱm7 Ⅰmaj7 bⅦ7(13) 으로 바꾸고 밥브룩마이어처럼 트롬본 화성 밑밥에 + 색소폰 멜로디 + 트럼펫 대선율로 바꿨다. 그리고 브릿지 화성은 바꾸지 않았고 그 뒤에 나오는 A변주는 베이스하강 모티브+뒷부분의 최고음 페달톤지속이 포인트인데 영민군을 비롯하여 다들 멋지게 연주해주었다.
(그 후엔 솔로부분을 기준으로 반으로 접어 데칼코마니.. 시간,정성,노력,능력부족에 따른 어느정도의 포기)
이렇게 가다보니 '나~의~ 그~대~는~' 하는 후렴부분을 어디에 넣어야할지 매우 애매했는데 왜냐하면 여태까지의 코드진행은 거의 모달인터체인지로 bⅦ 음이 살짝 강조되는 느낌이었는데 '나~의~ 그~대~는~'의 '그'에 떡하니 메이져7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고민끝에 내린 결론은 드럼 4마디 솔로 후의 진행에서 들을 수 있다. '나~의~ 그~대~는~'의 '는'은 b6음인데 그 디테일을 발견해주신 분들이 과연 계실지 모르겠다.
가장 크게 배운 점은 앞으로 배울 게 많다는 것.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악보를 완성해가지 않는 일은 매우 커다란 민폐라고 스스로를 얽매고 있던 나에게 '그러지 말고 같이 만들어가자. 그건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라며 나와 나의 음악을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 결국은 우리와 우리의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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