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제대로 된 글을 써보자> 1강

 

이상한 노트를 쓰지 말 것. 학생은 노트는 평생 동안 3공 노트를 써야 한다. 언제든지 뜯어서 재분류할 수 있고 가지고 다닐 수도 있다. 뒷면은 쓰지 않는다. 공책부터 바꾸세요. 인생이 달라집니다.

철학책은 나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철학책이 우리의 삶하고 관계를 맺으려면 적어도 다섯 단계는 거쳐야 한다. 즉 철학책을 안 읽는다고 해서 내 삶이 바뀌지는 않는다. 한편 버스 노선도 같은 것은 잘 읽어야 한다. 그러나 철학과 내 삶 사이에는 역사학, 경제학, 정치학 등의 여러 학문들이 놓여있다. 철학은 바로 여기에만 영향을 미칠 뿐이다. 평등 철학이 있다고 하면 이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평등주의 학문을 내놓고, 이 학문에 따라 평등주의 관료가 등장하며 이들이 평등주의 정책을 내 놓는다. 이 정책이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을 바꾸어 놓기도 하는 것인데, 이것이 이루어지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근육 기억이라는 것이 있다. 테니스 선수는 눈으로 보지 않고 라켓을 고쳐 잡는다. 무수히 해보니깐 되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은 머리가 아니라 근육에 기억을 새긴다.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학문에서도 이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 내가 아는 한 텍스트를 몸에 새기는 방법은 자기 팔뚝으로 써보는 수 밖에 없다. 여러 번 쓰고 나면 근육 기억이 생긴다.

글을 쓸 때 뒷문장이 앞문장의 꼬리를 계속 물고 들어가도록 써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을 놓아주지 않게 된다. 뒤 문단이 앞 문단을 먹고 들어가야 하며, 뒤 챕터가 앞 챕터의 꼬리를 물고 있어야 한다.

내가 시네21 ‘이창’에서 쓴 <사랑>이라는 칼럼에서는 ‘콱’이라는 말이 10번 나온다. 콱을 읽다보면 목이 막힌다. 사람들은 글을 읽을 때 무의식적으로 소리내어 읽기 때문에 이런 것도 고려해야 한다. 글을 고칠 때 마지막에 소리 내어서 읽어보도록 하라. 그러면 보이지 않았던 부분까지 잘 보이고 글을 좋게 다듬을 수 있게 된다.

(<<책과 세계>> 51쪽)"...그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을 미끼로 수많은 개인들의 삶을 빨아먹으며..."“빨아먹으며” -- 학문적인 글쓰기에서는 나오지 않는 술어이다. 의도적으로 관념어들 사이에 순수 우리말을 섞어 씀으로서 독자들의 감각을 건드리게 된다. 순수한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단어들을 골라내는 것도 배워야 한다. 이면지에 놓고 전체를 보면서 이 단어 저 단어를 골라가면서 10매를 쓰면 작업 시간이 20시간, 30시간도 걸릴 것이다.

글은 내용과 형식이 일치되어야 한다. 느긋하게 읽도록 하려면 만연체로 길게 늘여쓴다. 무조건 짧게 쓰는 게 좋지만은 않다.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에서는 20줄 정도가 한 문장인 경우도 있다. 읽다보면 숨이 가쁘다. <<책과 세계>>에서도 내가 딱히 좋아하지 않는 텍스트들은 짧게 끊어 썼다. 그러면 차가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내가 좋아하는 텍스트들은 쉼표로 계속 이어가며 늘여 썼다. 연애 편지 쓸 때 길게 늘여 쓰도록.

좋은 글은 풍부한 정보와 이를 합한 체계적 지식이 타당한 논리를 통해 정확하게 서술되어 있으면 된다. 풍부하고도 체계적인 지식과 타당한 논리, 정확한 서술이 구성요소인 셈이다. 빙산의 일각 법칙이라는 게 있다. 글을 쓸 때는 이를 지켜야 한다. 즉 아는 것의 극히 일부만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열을 알고 있으면 두 개만 써야 한다. 그 두 개에 열개를 묻어야 한다. 묻을 수 없으면 내버려둬라.

이제 자료를 모아야 한다. 책을 사고 자료를 프린트 했으면 자료를 모은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건 자료가 아니다. 뭉터기bundle일 뿐이다. 그것들을 읽고 정리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자료가 된다. 문단별로 요약하면서 읽고 옮겨 쓸 부분에는 네모칸을 쳐 둔다. 그렇게 읽은 후 노트에 정리하면 이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료를 만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렇게 하여 300매짜리 책 한권을 써야겠다 생각하면 기초적인 공부 10년을 포함하여 적어도 20년이 걸린다. 눈을 뜨고 감을 때 까지 한순간도 텍스트에서 눈을 떼면 안 된다. 몸을 계속하여 텍스트에 담그어야 한다.

이상의 강의로 아셨겠지만 글을 잘 쓰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쓰기 자체가 아니다. 계획 세우고 자료 모으는 것이 대부분이다. 글 쓰는 계획을 세우는 건 인생 계획을 세우는 것과도 같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적는다. ‘별 얘기 없었네’ 하고. 자신의 삶을 기록해보라. 그러면 인간관계가 정리가 된다. 핵심은 방만한 인간관계와 삶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강유원, <제대로 된 글을 써보자> 2강

 

필사 숙제를 해 보니깐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학생 “글의 내용이 더 잘 들어와요”) 그렇다. 찬찬히 손으로 써보면 글이 잘 들어온다. 글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종이에다가 펜으로 쓰는 것을 연습하라. 자신이 쓰는 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숙제 * 원고지 10매로 ‘횃불 학회란 무엇인가’, ‘철학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형식의 질문을 아무거나 써서 가지고 올 것. ‘의자란 무엇인가’ 같은 거 말고. 앞으로 매주 같은 주제로 글을 쓴다. 글쓰기를 잘하는 비결인데, 같은 주제로 계속 쓰면서 업데이트 시키는 것이다. 최유빈 씨는 ‘횃불 학회란 무엇인가’를 멋지게 쓸 수 있게 되는 게 이번 강의의 목표가 될 것이다.

‘what is question`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이는 정의definition, ‘무엇’을 묻는 것이다. 어떤 글이든지 정의가 없으면 힘이 없다. 자기가 쓰려는 주제에 대해서 `what is`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령 ‘자본주의 사회를 파악하는 최선의 학적인 방법을 서술하라’는 질문에는 `자본주의`와 `학적 방법`이라는 definition 두 개가 결합되어 있다. 주제가 주어지면 핵심적인 정의부터 확 잡고 있어야 한다.

책을 사면 구입한 날짜부터 쓴다. 구입 동기도 적어두면 좋다. 독서 카드를 쓴다면 저자, 이름 등 서지사항을 적고 -- 번역판은 영문 이름도 적는다. 책은 제목이 핵심인데 번역 이름이 개판인 경우가 많다 -- 목차를 옮겨 적는다. 독서 카드만 보면 책의 목차를 모두 훑어 볼 수 있는 셈이다. 목차만 봐도 머릿속에 지식이 들어간다. 잘 쓰여진 목차를 봐야지 목차를 잘 쓸 수 있게 된다. 틈날 때마다 목차를 들여다본다. 책을 사는 이유는 내가 책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다. 책에 손톱을 파고 넣는 방법이 적는 것이다.

한편, 책을 사면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 목차를 보면서 자신이 먼저 읽고 싶은 부분에 체크를 하라. 그리고 그 부분을 펴서 읽는다. 밑줄 치지 말 것. 고등학교 때 수험공부 한 기억 밖에 없는 사람들이 밑줄을 친다. 더러는 자까지 가지고 다니며 0.3mm샤프로 줄긋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신경 쓰다가 공부 못한다. 오늘 가는 길에 버릴 것.

책에 아무 표시도 안 한다는 사람이 있다. 자식 물려주려고 그러나 본데, 깨끗한 책은 갖다버린다. 무언가 흔적이 있어야 중요한 책인 줄 알고 안 버린다. 옮겨 적을 부분에 네모를 치라. 중요한 부분은 옆줄을 치고 요약 메모, 자기가 이해한 것들을 그대로 적어둘 것. 낡고 고리타분하지만 책을 완전히 소화하려면 이 방법 밖에는 없다. 앞장(간지)에는 읽고 든 느낌이나 책의 구입 동기, 질문들을 적어 둔다. 그러면 나중에 책을 펼 때 도움이 된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 짓을 평생 해야 한다.

삼공 노트에 네모 친 부분을 옮겨 적고, 요약-정리-이해한 부분들을 또 옮겨 적고 페이지 표시를 한다. 이렇게 하면 노트만 가지고 서평을 쓸 수 있다. 파일링 해서 아무 때나 가지고 다니면서 읽어두면 좋다. 머리가 바로 활성화되는 방법이다. 더디더라도 이 짓을 해보라. 한번만 하면 가속도가 붙는다. 일 년에 스무 권만 이렇게 해도 어느 수준에 달할 수 있다.

글을 읽을 수 있다고 문맹이 아닌 것이 아니다. 텍스트를 읽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글을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이 우리가 배우려는 것이다.

e-mail 제목에 ‘권율입니다’ 이런 거 쓰지 말 것. 이메일 제목 정하는 것에서부터 훈련을 해야한다. 내용에 맞는 정확한 제목을 쓸 것. 가령 청탁서를 쓴다고 하면 ‘[고대문화] 원고 청탁’ 이렇게만 쓰면 된다. 이렇게 해야 정리하기도 편하고 나중에 찾아 보기에도 좋다. ‘고대문화입니다’ 이러면 대책이 없다.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괜히 ‘옥고를 부탁드립니다~’ 이런 거 쓰지 말고, 받고자 하는 글의 definition을 명확히 하여 짧게 보내면 받는 사람부터가 긴장한다. 제목 잘 다는 것, 훈련은 일상적인 것이다.

다음 주는 설날이라 휴강. 그 다음 주에는 개요쓰기를 할 것이다.

 

 

강유원, <제대로 된 글을 써보자> 3강 1 of 2

 

* 과정의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

10매의 글을 종이에 작성해 보니깐 어떤가. (학생 “갑갑했다”, “고치기가 어려웠다”, “종이의 대부분이 찍찍 그어놓은 줄로 찼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컴퓨터로 썼다”) 워드로만 글 쓰다가 종이에 쓰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

워드로 글을 쓸 때는 모니터로 전체가 보인다거나 수정이 용이하므로 쉽게 글을 쓸 수 있다고들 생각을 한다. 물론 워드로 글 쓰는 것에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워드 글쓰기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막상 해보면 글을 촘촘히 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게 된다. 나도 간혹 시간 절약을 목적으로 워드에 글을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내가 보기에도 글이 허술해지고, 고치는 데 시간이 더 들어간다. 스미레 씨는 어땠는가? (스미레 “처음에는 워드로 썼다가 좀 고치고 종이에 옮겨 적었는데, 옮겨 적다보니깐 아니다 하는 부분이 많이 보였다. 말을 이을 때 불필요한 단어들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요즘은 블로그 형 글쓰기가 유행이다. 블로그의 글쓰기는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과 독자를 의식한다는 특징이 있다. 글을 쓸 때부터 독자를 의식한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현상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설명하려다 보니깐 너무 많은 말들이 들어간다. 무엇보다 글의 첫 독자는 자신이다. 내가 읽어서 좋고 문제가 없으면 된다. 물론 이러면 출판사 편집자들은 싫어하지만 편집자들이 글을 잘 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너무 독자를 의식할 필요는 없다.

워드를 통해 글 쓸 때 착시현상이 발생한다. 손으로 쓰니깐 찍찍 긋고 다시 쓰고 하여 자기 개판인 글과 대면해서 괴롭다고들 했다. 손으로 써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 개판인 것이다. 워드에서는 그 개판들이 지워지니깐 잘 썼던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난들 안 그런줄 아나? 내가 서평집 <<주제>>의 서문을 쓸 때 여러분과 똑같은 10매의 서문을 쓰는데, 첫 번째 문단을 쓰는 데 만해도 A4용지 이면지로 두 장을 썼다. “내가 보기에 세상에는 `책`이 몇 권 있다. 아니 다섯 권 있다.” 이걸 쓰는데 처음에는 “내 생각에 이 세상에는...”하면서 개판이었다. 만년필로 찍찍 긋고 위아래 문장 붙이고... 번거롭더라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글로 쓰는 게 잘 안 된다. 참 어려운 일인데. 굳이 손으로 쓰는 걸 강요하는 건 아닌데 이렇게 여러분에게 손으로 쓰는 것을 권유하는 이유가 있는, 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워드 프로세서를 통해 보면 뚜렷하게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 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기 눈앞에서 분명하게 확인을 하지 않으면 자기가 얼마나 엉망으로 쓰고 있는지, 얼마나 잘 쓰고 있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MS 워드에는 자기가 고친 흔적들을 갈무리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정 안 되면 이것을 사용해서 써보라. 얼마나 고쳐지는지. 자기가 어떻게 쓰고 고쳤는지 증거를 남겨야 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손으로 쓰는 것을 권하는 것은 자기가 글 쓴 과정을 추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워드로 쓰면 최종 결과물 밖에는 얻을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굉장히 많은 일들이 오고 간다. 내 글이 초고가 어떤 상태로 만들어 졌고...

* 자본주의를 알자

그 책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아닌가? 이 책은 대학생 필독서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 여러분들 토익이나 그런 것들 공부 잘 해야 취직이 되고 회사에서 높이 승진할 수 있게 아니다. 자본주의를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승진도 하고, 취직도 잘 된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잘 알려면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 여기 회사 다니는 분들 있으니까 내가 분명히 얘기 하는데, 자본주의에 대해 잘 알아야 회사에서 승진할 수 있다. 토익점수는 승진에서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죠? 취직에도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토익점수 높은 사람들 잘 안 뽑죠. 여러분들 그런 거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 책 반드시 읽을 것. 그리고 미셸 보라는 사람이 1987년에 쓴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책도 괜찮지만 절판되어서 구하기가 어렵다.

* 스미레 씨의 글

<심리학도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1. 심리학의 개념 / 2. 심리학에 인문학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이유

3. 인문학의 정의 / 4. 심리학도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5. 사회과학이기는 하나 인문학적 소양 필요 / 6. 소결

이렇게 쓰면 안 된다. 원고지 10매의 글에서 6개의 문단이 짜여진 개요 없이 쓰여 졌다. 개요를 딱 보면 균형이 안 맞는다. 제목이 <심리학도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인데 먼저 심리학과 인문학의 개념 규정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심리학과 인문학은 나란히 놓여 있을 수 있는 범주가 아니다. 인문학은 심리학의 상위 개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논리학에서 범주의 오류categorical fallacy이다. 중학교 학생 성적표와 대학생 성적표를 비교하면서 중학교 학생이 더 잘했네 하는 것. 이는 서로 놓여 있는 영역들이 다른 것들에서 그 콘텍스트들을 추상화시키고 그냥 단적으로 비교하는 것이다.

제목을 <심리학도가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로 고친다면 일단 수긍할 수 있다. 제목을 굳이 이렇게 쓰려면 ‘심리학을 포함한 사회과학’ 이렇게 심리학을 위치시키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를 논해야 할 것이다. 사회과학은 어떤 것이고 거기에서 심리학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며 그런 점에서 인문학은 이런 것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순서가 이렇게 나가야 한다. 그러면 첫 번째 문단에서 해야 할 이야기는 ‘사회과학으로서의 심리학과 인문학의 개념’이 될 것이다. 이것에 제일 넓은 범위이므로 이것부터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학생 ‘심리학도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알아요? 왜 몰라? (학생 “인문학도 잘 모르고 심리학도 잘 모르니깐요”) 인문학도 모르고 심리학도 잘 모른 데잖아. 어쩔 거야. 그러면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영역을 서술하고 이것들이 어떻게 차이나는지, 심리학은 그 속에서 어떤 것인지를, 즉 사람들에게 반드시 이야기해 줘야 할 것부터 먼저 정리를 해 줘야하는 것이다.

* Definition의 중요성

스미레 씨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대해 아무 엉망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definition[정의/한정]이 엉망이면 글의 나머지는 모두 무너진다. 그래서 서두의 definition이 엉망이면 나머지는 읽지 않아도 된다.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학생이 들고 있던)가라타니 고진의 <<윤리21>>, 이를테면 이 책을 볼 때는 이 사람이 윤리라는 개념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명백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학생이 내게 원고지 10매짜리 레포트를 쓸 때, 기본개념이 잘못 되어 있으면 아무리 멋진 문장을 쓰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사해도 나가리다.

고진이 도덕이라는 말과 윤리라는 말을 잘 구별해서 쓰고 있나. “나는 이 책에서 원칙적으로 자유를 자기 원인적이며 다른 원인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쓴다.”, “나는 이 책에서 도덕과 윤리라는 말을 구별하려고 했다. 칸트는 일관되게 도덕적=실천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 그가 도덕이라든가 실천적이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은 통상의 의미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것을 윤리라고 부르고, 도덕이라는 말은 통상 의미로 사용하려고 한다. 즉 도덕이라는 말을 공동체적 규범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윤리를 자유라는 의무와 관련된 의미로 사용한다.” 이렇게 도덕이라는 말과 윤리라는 말을 define하고 들어가는데, 이것이 이 책 전체에 걸쳐서 일관되게 사용되고 있다. 윤리21이라는 이 책은 도덕이라는 말과 윤리라는 말, 이 두 개의 개념으로 이 책 한 권을 이끌어 간다. 어떤 학문이든지 마찬가지이다.

스미레 씨가 실패한 지점이 이 부분이다. 핵심 개념에 대한 definiton을 놓쳤다. 이는 학문에 대한 정의가 없으니깐 그런 것이다. 학문이 뭔가. 학문은 체계적인 지식이다. 누가 식물 채집을 좋아해서 집에 2만 점의 채집을 해 놓았다고 하자. 그러면 이를 식물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단지 collect했을 뿐이다. 그러나 다만 10개의 표본을 모았을 뿐이라고 해도 이를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뭔가를 내놓으면 우리는 이를 식물학자라 부를 수 있다. 즉 학문은 체계적인 것이 중요하다.

대학이라는 곳이 늦는 이유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체계를 만들어 내는 방법의 차이에 따라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나뉜다. 이 글은 80%, 90%가 실패이다. 자기가 쓰는 핵심 개념을 철저하게 define하고 그걸 일관성 있게 가져가야 10매의 글을 쓸 수 있다. 그것이 글을 쓰는 데 있어 출발점이다.

추가 * 영미의 moral philosophy와 ethics

칸트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지켜야 하는 것을 말한다. 고진은 이를 윤리학이라 설명한다. moral에는 그런 개념이 없다. 그때그때 합의한 것이 도덕철학이 되는 것이다. 공리주의는 여러 사람에게 useful한 것이 good하다고 말한다. <<윤리21>>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유는 타자를 목적으로 대하는 것을 희생시키고 있다. 영미계의 윤리학이 칸트를 배척한 것은 사실 칸트의 철학 안에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비판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행복주의, 공리주의란 자본주의적 경제에 대한 긍정이다. 영미계의 윤리학은 인간이 이기적이며 각자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거가에서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달성하는 것이 윤리적 과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행복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양적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고 행복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다. 결국 행복=이익을 가정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러한 윤리학의 문제는 경제학의 문제로 치환된다.”

 

 

강유원, <제대로 된 글을 써보자> 3강 2 of 2

 

* define하기; agent 홍의 글 <맑스의 국가관은 무엇인가>에서

글의 내용을 한마디로 하면 뭔가? (홍 “한 마디로 하기는 어렵고 마르크스의 국가관은 세 가지로 나뉘는데, 1. 자본주의 국가 2. 프롤레타리아 독재, 3. 국가 이후의 국가 즉 공산주의 국가) 내가 한마디로 해보라고 굳이 한 이유는 위의 주제를 원고지 10매에서 못쓰기 때문이다.

<<공산당 선언>>에 주석을 단(<<The ADVENTURES of the COMMUNIST MANIFESTO>>) 할 드레이퍼Hal Draper는 세 권의 두꺼운 책으로 낸 <<칼 마르크스의 혁명 전략Karl Marx`s Theory of Revolution>>에서 맑스의 국가관을 각각 한 권씩 할당하여 서술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와 더불어 일진급 학자인 밥 제솝도 <<전략관계적 국가 이론: 국가의 제자리 찾기Institutional (re)turns and the strategic-relational approach>>에서 자본주의 국가관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다루고 있다.

원고지 10매에 글을 쓰려면 적어도 주제를 한 가지만 정해서 써야한다. define의 첫 번째 뜻은 정의 내리기이다. 두 번째는 한정 짓기이다. 자기 글의 한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고지 10매의 글에서는 자기 글을 한 마디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밝은 미래 이룩하자 식의 ‘막판에 천사되기’와 같은 짓을 저지르게 된다. agent 홍은 맑스의 국가관을 원고지 10매로 끝장 보겠다는 ‘석학’스러운 시도를 했다. 글쓰기에 있어서 이 define이라는 것을 머리에 새겨라.

나는 <Hegel의 변증법과 그것이 마르크스에게 끼친 영향>이라는 글에서 어디까지 이야기하겠다고 서두에 아예 써 놓았다. 금연을 할 때 ‘주위에게 금연 사실을 널리 알려라’는 수칙이 있듯, 독자가 그걸 검증할 수 있도록 글에다 자신의 글의 개요를 아예 써 넣는 것도 괜찮다.

define을 머릿속에 꼭 담아둘 것. 먼저 핵심 개념을 define하라. 그리고 논의의 범위를 define한다. 세 번째 define은 독자를 define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만이 읽는 글은 일기다. 글인 이상 누군가 읽는 사람이 있다. 항상 글을 읽힐 때에는 누구에게 읽히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책을 쓸 때 항상 이 글을 읽힐 구체적인 누군가를 지정해서 쓴다. 같은 내용일지라도 누구에게 읽힐 것인가에 따라 쓰는 개념이나 단어의 수위라는 것이 확 달라진다. 내가 가령 ‘칼 마르크스의 국가관’을 쓴다고 했을 때, 대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교지에 청탁을 받아서 쓴다면 내용이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개념을 define하면 자기가 쓰는 글에 자기 스스로 명료함이 얻어진다. 글은 자기가 쓰는 글을 자기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가 쓰는 글의 개념을 따져 묻다보면 이를 얻을 수 있다. 논의 범위를 define하면 글이 짜임새 있게 쓰여 진다. 독자를 define하면 문장이 정리가 된다. 어떤 글을 보면 책 한 권에서도 문장 수준이 들쑥날쑥이다. 이 사람이 베스트셀러 노릇을 하다보니깐 그런 것이다. 많이 팔려다보니깐 쉽게 쓰고, 그러다 폼 좀 잡으려보니깐 어려운 개념이나 표현을 중간에 섞는다. 하던 얘기 또 하고 필요 없는 말들이 들어가서 괜히 글만 두꺼워진다. 미처 덜 다듬어진 글 같다. 독자가 define이 안 되니깐 문체 스타일이 정리가 안 된다.

사실 정말로 중요한 define은 논의 범위를 define하는 것이다. 91년부터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빨간펜 들고 레포트를 엄청나게 읽다보니깐, 너무 많은 것을 짧은 글 안에 담으려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세밀한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쓰는 연습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루두루 골고루 많이 아는 것이, 얇지만 넓게 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generalist를 지향하는 사회 풍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agent 홍이 자본주의 국가관에 대해서 쓰고, 또 다른 agent가 또 쓰고 해서 세 명이 쓴 것을 모아서 내면 된다. 자기가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할 필요 없다. 자기가 잘 하는 부분만을 하면 된다. 넓게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오늘은 세 가지 기본을 이야기 했다. 지난 시간에는 개요 짜기의 필요성을 말했다. 개요를 짜기 전에는 자료 정리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따지면 서술의 문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개요를 잘 짜려면 잘 쓰여 진 개요들을 익혀야 하는데, 책 목차 쓰기도 좋고 문단마다 한 줄로 요약하기도 좋다. 책 사서, 한 권만 해 보면 된다. 한 권만 해보면 ‘내가 왜 이렇게 책을 잘 읽게 됐지?’하는 게 느껴진다. 책을 잘 읽는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글 잘 쓰려면 책을 잘 읽어야 한다. 내가 남이 쓴 글을 읽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래야 내 글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한 권 사서 옆에다 요약 쓰기, 다음 주까지 해올 것. 조금만 해오면 된다.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봐줄 것이다.

 

 

강유원, <제대로 된 글을 써보자>4강

 

여러분의 과제를 받으니 심히 마음이 아프다.

‘제대로 되는 글을 써보자’ 이런 주제로 강의를 듣는데 왜 선생이 문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안 하고 구조만 가지고 계속 갈굴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처음에 내가 얘기했듯이 문장 쓰는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다. 구조가 먼저 되어야 한다.

원고지 10매를 남 앞에서 발표를 한다고 해보자. 원고지 10매는 대체로 6개 내지는 7개 되는 문단으로 구성되는데 이를 파워포인트로 만들면 5, 6매쯤 된다. 이는 대략 15분에서 길면 30분 정도 걸리는데 이게 굉장히 길며 지루하다. 이때 결론을 제시해 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해를 못한다.

글을 쓸 때는 마지막에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독자들에게 조금 더 알려주고 조금씩 더 알려주고 하면서 완전히 마지막에는 단단하게 모든 것이 응축된 결론에 담기게 되는데, 그러나 쓰는 사람인 첫 문장을 쓰는 시점에서 결론을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설득을 할 수 있다. 여러분이 자신의 개요를 가지고 그 개요의 내용을 누군가에게 설명을 한다고 하면 그렇게 쓸 수가 있다.

지금 배우는 방법이 단순히 레포트나 학회지에 글 쓰는 것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원고지 10매로 남을 설득하는 아주 기본적인 요소이다. 15분에 남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15분 시간이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 그러면 3분 만에 해결을 해야 한다. 3분이 없으면 30초다. 전철을 타고 다니면 전철 안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 유심히 봐라.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파는데 각자가 그 물건을 설명하는 방식이 다르다. 여러분이 ‘소통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이 칫솔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을 쓰라고 하면 이렇게 쓰지 않을 것이다.

이지혜 학생이 천문학을 판다고 생각해보라. 고등학생에게 천문학과를 오도록 설득해야 하는데 하루에 한 명을 모집할 때마다 한 끼씩을 먹을 수 있으며 못하면 바로 굶는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렇게 안 쓴다. 글이란 것이 그렇게 절박하게 쓰여져야 하는 것이다. 전철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은 절박한 사람들이다. 나는 여러분의 글에 최대한의 호의를 가지고 읽어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전철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여러분이 놓인 상황은 이것에 가깝다. 아무도 글을 읽어주지 않는다.

* 서론에 대해

시중에 나와 있는 논술 책을 다 가져다가 체크를 해 봤더니 서론에 관해서 천편일률적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어느 대학에서 기출문제인 모양인데 뒤르켐이 쓴 <<자살론>>이 있고 그것에 관해서 논의를 해 보라고 했다. 예시 답안이 이렇다. “요즘 자살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쓰면 안 된다. 뒤르켐의 <<자살론>>이란 것은 자살에 관한 사회적인 원인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첫 문장은 “자살의 원인은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있다” 이렇게 들어가는 것이다.

글을 읽는 사람은 첫 문장에서 이 사람이 제대로 문제를 설정하고 있는지를 보려고 한다. 인생살이 이야기 보려 하는 것이 아니다. “천문학은 우주와 그것이 포함하는 천체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렇게 첫 문장을 써야지 “한 순간의 선택은 시간을 거쳐 태풍이 된다” 이렇게 쓰면 안 되는 것이다. 독자의 알바 아니다. 독자는 이를 읽는 순간 눈을 돌린다. 독자가 <천문학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읽고 기대하는 것이 있다. 지하철에서 물건 파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파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면 파는 사람은 “이 보드마카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이렇게 시작을 해야 한다.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첫 문장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을 던지라는 것이다. 찝찝해 할 것 없다. 내가 레포트를 읽고 평가할 때의 기준이 그것이다. 서론을 본다. 서론의 첫 문장은 뜨뜻미지근한 이야기를 쓰지 말 것. 세상은 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둥.

서론의 두 번째, 반드시 자기가 논의 하고자 하는 논의의 범위를 집어넣을 것, 즉 논의의 범위를 분명하게 define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면 definition으로 들어갈 것. 여러분들은 일부로라도 이러한 형식에 맞추어서 글을 써야 한다.

세 번째는 (가능하면) 독자의 범위를 define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매체에 따라서 독자가define 되기 때문에 굳이 글에 집어넣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다.

* 어휘들

사람들이 예상하는 단어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에 맞추어서 써 주어야 흡수가 잘 된다. 중국집 코스 요리에서 스파게티가 나오면 지배인 나오라고 할 것이다. 멋 부리려고 걸맞지 않은 단어를 쓰지 말고 정확한 어휘를 구사하도록 노력하라.

“역사는 지나간 일, 과거에 대한 모든 것이다” ‘모든’, ‘절대’, ‘항상’ 이런 보편 언명은 학문적인 글에서 쓰는 것이 아니다. 글 중간에 “” 없이 인용된 헤이든 화이트의 서술이 읽는 사람에게 주는 효과는 뭘까? “” 없이 인용하는 것은 표절이다. E,H.카는 또 어떤가. 글의 품격과 설득력을 올려줄까? 헤이든 화이트의 무슨 책에서 인용을 했나? (학생: 잘 몰라요) 황우석이 이러다가 그렇게 되었다. 내 선생은 황우석 사태가 일어났을 직후 “지도교수에게 도대체 어떻게 배웠길래 그 모양이야?”라고 했다. 학부 시절부터 자신의 글에 대한 민감성이 훈련이 안 되면 눈이 확 돌아간다.

* 개요

다른 학생의 글은 개요를 쓰다가 도중에 한 번 엎은 것으로 보인다. 중간에 글이 엉킨 것 아닌가? 이를 어째 아냐고?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8개 문단으로 되어 있는 글인데 중간까지 잘 나갔으면 나머지도 잘 나가줘야 한다. 그러나 나머지가 개판이면 그런 식이다. 이는 개요1과 개요2가 어설프게 짬뽕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개요를 쓰는 데 일반적이고도 손쉽고 어필할 수 있는 방식을 가르쳐 주겠다. <마이걸>은 잘 만들어진 드라마다. 왜 그런가? <내 이름은 김삼순>은 삼각관계다. 갈등이 두 개 밖에 없어서 흥미가 떨어진다. 반면 <마이걸>에서는 두 명의 남녀 주인공에 대립하는 두 명의 라이벌 들이 나와서 대립 구도, 갈등이 장난이 아니다.

인상 깊은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주인공에 대립하는 적대자Antagonist가 있을 것이다. 이 안타고니스트를 통해서 주인공의 성격이 끌어져 나온다. 대립 구도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은 낡은 수법이지만 효과적이다. 항상 대응하는 두 개의 쌍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글쓰기에 있어서 가장 수월한 방법은 대조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천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쓸 때에도 천문학과 역사를 대조시킨다든지 천문학과 다른 학문을 대조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자기 주제를 뚜렷한 대조 속에서 보여줄 수 있다. <<책과 세계>>에서는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이중 구조로 구성되었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2>> 박노자는 글을 잘 쓴다. 글은 잘 쓴다는 게 유려하고 화려한 문장을 구사한다는 것이 아니다. 박노자는 definiton을 잘 한다. <합리화된 폭력의 사회>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 통치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 하나가 이념적 정치적 타자를 폭력으로 분쇄하는 완력장치라면, 또 하나는 매체 군대 등 기제들을 동원해서 국가와 자본 독재 에 대한 피지배자의 합의를 조장하는 등 사회적 헤게모니의 장악을 위한 공작을 벌이는 것이다.” 질문으로 시작하고 명확한 definition이 있는 잘 쓰인 첫 문장이다. 소설을 보고 배울 게 아니라 이런 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

그러면 글을 잘 쓰기 위한 스킬은 무엇인가.

1. 초보자들은 문장을 짧게 끊어서 써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하는 원칙은 아니나 문장을 처음 쓰는 초보자들은 문장을 짧게 끊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가 쓰는 글의 주술관계를 분명히 할 수 있다.

2. 물음과 답을 반복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글 속에서 묻는 것은 괜찮은 것이다. (학생 “쓰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누가 그러나. 문답은 대중적 글쓰기이다. 예/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을 중간에 삽입하면서 독자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논지를 정리해 간다. 질문을 통해서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할 수가 있다.

3. 한 문단을 쓰고 나서 반드시 소리 내어서 읽어 봐야 한다.

문장이 숨이 찰 정도로 길면 끊는다. 자기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어야겠다는 환상을 버리라. 문장은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면 안 된다.

4. 결론을 끝까지 가져가야 한다.

글을 쓰면서 계속 결론과 관계가 있나 없나를 끝까지 살펴봐야 한다.

5. 냉정한 어투로 써야 한다.

첫 문장을 멋지게 쓰더라도 뒤가 받쳐 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사무치는 불안” ‘사무치는’은 지운다. 얼마나 사무치는지 측정이 안 된다. 대상 지칭이 불분명한 형용사는 쓰지 말 것. “짙은 안개” 이것은 노래 가사다. ‘짙은’을 빼라. “이것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역사이다.” ‘계속해서’ 뺄 것.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한다.

개요를 잘 썼나 못 썼나를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사람한테 그 개요를 가지고 한 번 설명을 해보면 된다. 말로 설명이 안 되면 제대로 쓰지 못한 것이다. 개요가 안 써는 것은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개념이 정리가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개요가 안 나온다. 개요를 쓰면서 definition card를 가지고 썼는가?

*  개념 카드 definition card

3~5분의 시간이 남는다면 무엇을 하는가? 멍하게 보내나? A6 메모리 카드에 개념 카드를 작성한다. 책에서 무언가 개념이 등장할 때마다 표시해 놓고 나중에 카드에 옮겨 적으며 시간 날 때마다 꺼내 읽는다. 3분이면 개념 카드 한 장을 작성할 수 있으며 개념 카드 3장을 읽을 수 있다. 무엇이건 개념 카드를 크리넥스 한 통을 모으면 대학 4년을 다닌 보람이 있다.

 

강유원,<제대로 된 글을 써보자> 5강

 

오늘은 글 고쳐 쓰기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이다. 또한 글을 쓰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제목 달기’를 이야기 할 것이다.

자신이 고칠 글이 주어지면 첫 문장부터 고쳐 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에 앞서 overview를 해야 한다. 글을 전체적으로 살피면서 각각의 문단에서 필자가 하고자 하는 얘기가 뭔지 살펴봐야 한다.

* 김현 학생의 <한국의 ‘사학’과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하여> 글에 대해

첫 부분에 김지하의 시 <오적>이 인용되어 있다. 시를 인용하는 것은 대체로 좋지 않다. 게다가 김지하가 별로 안 좋다. 10년 후에 읽어보면 내가 김지하를 왜 인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의외로 기억력이 좋다. 글이란 게 생각보다 오래 간다.

게다가 김지하가 70년대 유신 세대의 인물인데, 새내기들이 김지하를 모른다. 김현 학생은 아나? 김지하 어떤 사람인가. 새내기들이 <오적>이 왜 나왔는지, 오적이 뭔지 모른다. 이것의 인용이 김현 학생이 의도하던 효과를 전혀 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글은 ‘새내기호’에 실리는 글이라 했다. 이 강의를 듣는 학생도 잘 모르는데 새내기들이 어찌 알 수 있을까. 차라리 한국의 사학을 이야기하려면 <두사부일체>를 쓰는 게 낫다. <두사부일체>는 다 안다. <말죽거리 잔혹사>도 괜찮다. 유하 감독이 상문고등학교 출신인데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통의 화제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하자고 인용하는 건데 이런 영화들보다 나은 매체가 없다. 꼭 넣고 싶으면 ‘두사부일체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는 식으로 이를 인용해서 쓰라. 글을 쓸 때 이 글을 읽을 독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김현 학생이 대학 막 들어왔을 때 이 글을 주면 알겠나?

이 글의 문체는 ‘광분조’이다. 글에 대한 불멸의 법칙이 있다. ‘필자가 광분하면 독자는 싸늘해진다.’ 필자가 차분할수록 독자가 광분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남을 진짜 잘 괴롭히는 사람은 차분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괴롭히는 사람이다. 군대에서 배웠다.

* 글 고치기

‘얘기’ -> 이야기 : 될 수 있으면 축약어를 쓰지 말라.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에 관해서다.” : 주술 관계가 맞지 않는다.

“사학은 ... (라고) 할 수 있겠다.” : ‘할 수 있다’ 남용하지 말 것. 자신이 없으니깐 이러는 것인데 definition은 자신 있게 해야지 ‘할 수 있다...’고 서술해서는 안 된다. 사전에서 ‘할 수 있다’ 이렇게 정의하는 거 봤는가. ‘-수 있다’는 해석interpretation의 경우에 쑬 수 있다.

‘...에 의해 설립된’ -> ‘...가 세운’ : 글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법칙이 있는데 어떤 것을 말할 때 그것을 더 잘라낼 것이 없는 최소의 단어로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적은 단어로 말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고친다. ‘...에 해당하고’ -> ‘...이고’

이 글의 두 번째는 ‘잘난체’ 어조이다. 너무 많은 한자어들이 들어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새내기들이 읽으면 염증이 날 수도 있다. ‘경험’이라는 말은 정말 새내기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말일 것이다. ‘겪은 적’ 정도로 풀어 쓰는 게 좋다.

딱 필요한 곳에서만 관념어를 쓸 것. 최소한의 단어로 쓸 것. 이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글을 고치면 문장은 거의 다 고쳐진다. 첨삭이 확 나온다. 내용에서는 definition은 정확하게 하고 있는가, 구조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가. 서론은 분명하게 시작하고 있는가, 결론은 오바하고 있지 않은가. 글을 고칠 때 이런 기준을 가지고 고쳐야 한다. 논술 교재의 논술 평가표를 보면 완전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분들도 익히 알고 있듯이” -> “국사책에서 배웠듯이” : 확 다가오게 하려면 이렇게 쓰면 된다. 이렇게 쓰면 독자들이 슬슬 떠오른다. 열 개의 내용을 쓴다고 했을 때 독자가 아는 것이 세 개는 있어야 독자가 떠나지 않는다. 일종의 독자 배려 장치인 셈이다.

‘사학 12도는 ... 훨씬 더 큰 명성을 얻는다’ : 영어로 치면 great great great! 식이다. 오바가 심하다. 글에다 빈말하지 마라. 오바다. 그러면 인생이 오바가 된다. 글에는 fact만 쓰면 된다. ‘강유원이 얼마나 강한지’ 형용사를 달 필요가 없다. 몇 놈을 눕혔는지 말하기만 하면 된다.

* ‘우리나라’ -> ‘한국’ : 고려와 조선을 지칭하면서 ‘우리나라’라는 말을 아무 문제없이 쓰는데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이는 국가의 명칭을 쓰는데 알게 모르게 배어있는 한국사의 명칭이다. our state라는 말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조선, 신라, 고려 등을 마치 남의 나라 보듯 해야 한다. 그래야 사태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으로 불러라. 박노자는 우리나라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박노자의 입장에서 글을 쓰라. 그러면 관점이 달라진다.

“그러나 서원이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 소리 내어 읽어보라. ‘서원이 시간이..’ 말이 안 맞는다. ‘시간이 갈수록 서원이...’로 고칠 것. ‘기하급수적’ -> 전혀 fact가 아니다. 기하급수적으로 서원이 어떻게 늘어났는데. 한집 건너 서원이었다는 것인가. 기하급수적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생물, 세포나 바이러스 이런 것이나, ‘황우석의 거짓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하는 식이다. 후자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이다.

“단계적으로 차츰차츰 시행착오를 겪으며” : ‘차츰차츰’을 빼자.

‘떠들어 대던’ : 구어체는 상 티 난다. 본격적으로 광분체가 시작되었다. 이런 단어가 한 번만 나오면 쇼킹하지만 자주 나오면 별로이다. 글을 쓸 때는 밍밍한 단어로 쓰라.

* 제목 다는 법

제목을 다는 법을 생각해보자. 일단 냉정하고 가장 무미건조하게 제목을 달아 본다. 홍보 효과를 고려한 제목을 다는 것은 그 이후이다.

각각의 문단이 가지고 있는 주장들을 쭉 읽어보고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를 제목으로 올려야 한다. 가장 정직한 제목이 가장 쇼킹한 제목이다. 주제를 제목으로 올리면 된다. 그것을 독자도 원한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제에 내용을 담으면 된다.

다음 주에는 논문 급의 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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