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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는가? - 폴 오스터

장삼도 2012. 9. 16. 22:14

「뉴욕」지의 질의에 대한 답변

<뉴욕>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센트럴 파크 남쪽의 콜럼버스 서클 모퉁이에 있는 우리 할아버지네 60층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풍경이다. 창문은 열려 있고, 나는 손에 1페니짜리 동전을 쥐고 창가에 서서, 동전이 도로에 떨어지는 것을 보려고 그것을 창밖으로 내던지려 하고 있다. 그 때 나는 기껏해야 네 살이나 다섯 살이었을 것이다. 내가 막 손가락을 펴려는 순간,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안 돼! 그 동전이 누군가에게 맞으면 머리 속으로 곧장 뚫고 들어갈 거야!」

1995년


왜 쓰는가?

「미안하다, 꼬마야. 나도 연필이 없어서 사인을 해줄 수가 없구나」... (중략)

그 날 밤 이후, 나는 어디에나 연필을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외출할 때는 반드시 주머니에 연필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 연필로 뭔가를 하겠다는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늘 준비를 갖추어 놓고 싶었다. 빈손일 때 한 번 당했으니,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작정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세월은 나에게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히 가르쳐 주었다. 주머니에 연필이 들어 있으면, 언젠가는 그 연필을 쓰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크다.

 내 아이들에게 즐겨 말하듯, 나는 그렇게 해서 작가가 되었다. 

1995년 (p.41)


언젠가 우리 어머니한테 일어난 일이 생각난다네...

「자네가 보내준 글 말인데... 」그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그 글을 읽으면, 언젠가 우리 어머니한테 일어난 일이 생각난다네. 하루는 길거리에서 웬 낯선 사람이 어머니에게 다가오더니, 사뭇 상냥하고 우아한 어조로 어머니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칭찬했지. 어머니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도 없었고, 머리카락이 다른 부위보다 특히 돋보인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네. 하지만 그 낯선 사람의 칭찬 덕분에 어머니는 그 날 온종일 거울 앞에 앉아서 머리를 매만지고 치장하고 감탄하면서 시간을 보냈지. 자네 글도 나한테 꼭 그런 역할을 해주었어. 나는 오늘 오후 내내 거울 앞에 서서 나 자신을 찬탄했다네.」(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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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슬러와의 콜라보레이션 비디오 링크




펜실베니아 주지사에게 말하는 보내는 탄원서

(주석 - 1970년대 미국에서 흑인 민권 운동을 주도했던 <흑표범당>의 필라델피아 지역 활동가이자 라디오 저널리스트인 무미아 아부-자말 Mumia Abu-Jamal은 1981년 12월 9일 필라델피아 거리에서 동생이 경찰에게 구타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를 말리던 중 경관 대니얼 포크너가 쏜 총에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나, 경관 포크너 역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검찰은 무미아를 살인범으로 기소했고, 경찰의 강요에 따른 증인들의 위증, 원천 봉쇄된 변론, 인종 편견을 가진 배심원 선정 등 숱한 문제점들이 제기되었음에도 펜실베이니아 법원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995년 6월 무미아는 선고 확정 뒤 구제를위한 청원을 제기했으나 기각되었고, 펜실베이지아 주지사 토머스 리지는 그 해 8월로 사형 집행 일자를 잡았으나 국내외의 대규모 항의 때문에 집행이 유예되었다. 이 사건은 흑인 민권 운동에 대한 탄압과 사형 제도 및 사법 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부각되어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


이 글은 리지 주지사에게 무미아 아부-자말의 목숨을 구함으로써 우리에게 긍지를 느끼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글이다. 







글의 힘을 멋지게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폴 오스터.